미국인들의 이상을 반영하는 논평입니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 미국인들은 앨라배마 주 남부 출신의 침례교 목사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합니다. 킹 목사는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사회 변화를 추진한 미국의 민권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살아있더라면 1월 15일 그는 96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마틴이 태어난 나라는 인종 차별과 차별이 만연한 나라였습니다. 대부분의 남부 주들은 이른바 ‘진 크로우 법’. 즉, 백인과 유색 인구의 분리를 제도화하는 지역 법률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킹 박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성경적 명제를 믿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모토에 따라 민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킹 박사는 “변화는 필연의 수레바퀴에 굴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온다”고 믿으며,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보이콧, 농성, 평화 행진 그리고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 행위를 조직하고, 참여했습니다.
킹 박사는 한때 “양심이 말하는 법을 어기고, 그 부당함에 대한 공동체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기꺼이 징역형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법에 대한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권 활동가들은 때때로 의도적이지만 평화롭고 정중하게 백인 시민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기 위한 법을 어겼으며, 따라서 이러한 법의 불공정성을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킹 박사의 가장 큰 업적은 1964년 공공장소에서의 차별과 고용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과 1965년 투표법이 통과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두 가지 승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킹 박사는 한때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으며,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은 그의 인생을 이끌었지만 다른 사람의 증오는 젊은 나이에 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1968년 4월 4일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그는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분리주의 법은 폐지되었고, 인종차별은 법적으로 처벌 가능하고, 처벌 가능한 범죄가 됐습니다.
킹 박사의 삶은 그 자신의 말로 잘 요약됩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지,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국인들의 이상을 반영하는 논평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영문 또는 한글로 편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실 주소는 Editorials, Voice of America, 330 Independence Ave, SW, Washington, DC 20237 입니다. 그리고 웹사이트 주소는 www.voanews.com/editorials 입니다.